베데스다 신약성경강해

[디모데후서 1장 성경 좋은 말씀] 진리 보수(딤후 1:1-18)

성령의 능력 2022. 4. 29. 15:41
반응형

디모데후서 1장에서는 복음을 사수해야 할 것에 대해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하여 성도들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은 거짓 복음이 너무나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단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상대로 거짓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성도들을 지켜야 합니다.

 

진리 보수(딤후 1:1-18)

 

1-5, 문안과 사랑

[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 . . .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자기의 뜻이나 주위 사람들의 뜻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당신의 원하시는 자들을 일꾼으로 부르시고 세우신다. 예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도 당신의 원하시는 자들을 불러 사도로 삼으셨다(3:13-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이라는 말은 복음의 중심 내용을 드러낸다.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의 약속이다(3:16).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것은 영적인 의미이다. 바울은 독신으로 살았고 디모데에게는 육신적 부모가 있었으나(고전 7:7; 16:1), 디모데는 영적으로 바울에게 사랑하는 아들과 같았다. 육적인 관계보다 영적인 관계가 더 친밀하고 값지다. 바울은 그에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기원한다. 바울의 서신의 초두에서 항상 듣는 이 기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긍휼로 구원을 받았고 또 날마다 성화의 과정을 걷는다. 또 이 구원의 은혜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의 참 평안과 몸의 건강, 또 물질적 안정과 환경적 평안까지 주신다.

[3-5]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에피포데오)[간절히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바울은 밤낮 기도하는 중에 항상 디모데를 생각하였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는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바울은 디모데의 진실한 눈물을 생각하며 그를 보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를 봄으로 그의 기쁨이 가득하기를 원했다. 디모데의 눈물은 그의 거짓 없는 믿음을 증거했다. 그는 진실한 믿음의 청년이었다. 그의 눈물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며 자신의 부족을 뉘우치는 눈물이며 영혼들을 위한 구령(救靈)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디모데의 진실한 믿음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의 외조모 로이스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 속에 그런 진실한 믿음이 있었고 그 동일한 믿음이 아들 디모데에게도 있었다. 경건한 자녀는 경건한 가정에서 나온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은 중요하다. 불경건하고 음란한 세대에 경건하고 거룩한 어머니들이 많이 필요하다.

1절부터 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긍휼과 평안을 사모하며 그것을 받아 누리자. 둘째로, 우리들도 바울과 디모데 같은 아름다운 동역자 관계, 성도 관계를 사모하며 이루어 가자. 셋째로, 우리는 디모데에게 주신 눈물 있는 진실한 믿음을 사모하며 본받자. 넷째로, 우리의 가정은 디모데가 자란 가정 같은 경건한 가정이 되기를 소원하고 또 디모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본받아 자녀들을 바른 말씀으로 양육하자.

6-11,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6-8]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 . . .

바울은 또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심령임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복음을 위해 함께](NASB, NIV) 고난을 받으라.”

사도들의 안수는 특별한 은사를 동반했던 것 같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했을 때 성령이 저희에게 내려오셨었다(8:17). 바울이 디모데에게 안수했을 때도 하나님의 은사가 디모데에게 주어졌다. 디모데는 그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해야 하였다. 그 은사는 복음의 일꾼으로서 필요한 사명감과 열심과 충성심 등을 동반한 은사이었을 것이다.

디모데가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여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심령을 주지 않으셨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심령을 주셨기 때문이었다. 오늘날도 교회의 직분자들은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 두려워하지 말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심령으로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디모데는 하나님께로부터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심령을 받았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와 또 주를 위하여 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 말고 복음을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했다.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도우시며 특히 고난 중에서 그러하심을 보인다. 디모데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도 주의 복음과 주를 위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셨다(8:38). 주께서는 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5:11-12). 성경 역사상 믿음의 선진들은 많은 고난을 받았었다(11:36-37).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 . . .

바울은 또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본문은 복음이 주는 구원의 근거를 보인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신 거룩한 부르심은 사람들의 의로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근거한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 전의 선택과 예정에 근거한 것이다.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이 구원의 은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나타났고, 그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확증되었다. 주 예수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중요한 내용이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과 그의 대속 사역과 영원한 생명을 확증하였다.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이방인들의](전통본문)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사도들의 설교를 통하여 열매를 맺었다. 바울은 그들 중의 한 사람이다. 바울은 자신이 이 복음을 위해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것을 확신하였다. 특히 그는 이방인들의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 그가 쓴 13권 혹은 14권의 서신이 없었다면 신약성경은 크게 부족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필요 적절한 인물로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바울 서신,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시대가 정신적으로, 신앙 사상적으로 혼란할수록 우리는 사도들의 교훈인 신약성경을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6절부터 1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자. 둘째로, 이 구원과 영생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죽음과 부활로 확증되었고 사도들을 통해 밝히 증거되었으므로 신약성경을 읽고 복음을 확신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심령이 시시때때로 불일듯하게 되기를 기도하자. 넷째로, 특히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종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자. 우리는 오직 마귀에 작전과 꾀에 넘어져 죄를 짓지 말고 또 낙심치 말자.

12-18, 바른 말씀을 지키자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 . . .

바울은 말한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이를 인하여는 앞절에 말한 대로 복음을 위해 전파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일 때문에라는 뜻이다. 바울이 옥에 갇혀 당하는 고난은 복음 전도자로서 받는 고난이었다. 그가 전도자가 아니었다면 그런 고난을 받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고난의 길이다. 사탄은 영혼 구원의 일을 가장 미워한다. 악한 자들도 자신들의 악함이 드러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복음이 세상의 악을 정죄하기 때문에, 악한 세상은 복음 전파를 가장 싫어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전도자에게 고난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바울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그의 의뢰한 자를 알고 그가 자기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지키실 수 있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의뢰한 자란 모든 성도들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또 바울이 의탁한 것이란 자기의 영혼과 생명 그리고 그가 사명으로 받아 힘쓰는 복음 사역과 그가 세운 교회들일 것이다. ‘그 날까지’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혹은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를 가리킬 것이다.

바울이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그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 즉 바울이 현재 당하고 있는 부당한 고난까지도 보시고 아시고 공의로 판단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사랑이 풍성하시므로 결코 자기 백성과 사랑하는 종들을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또한 전능하시므로 그의 참된 종들을 도우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고 오직 그의 명령을 지키고 그 외의 모든 일은 그에게 맡기고 그의 처분을 기다리면 된다.

[13-14]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바른 말들의 본 혹은 개요를]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 바른 말들의 본[혹은 개요]을 지키라”고 말한다. ‘지키라는 원어(에케)가지고 있으라는 뜻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라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써라는 뜻이라고 본다. 우리는 주를 믿고 사랑함으로써 바른 말씀들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바른 말들을 지켜야 그것들을 바르게 잘 전할 수 있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바른 말씀들을 굳게 지켜야 한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은 복음 전파의 일을 가리킨다고 본다. 전도의 직무는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그에게 주신 전도자의 직무를 디모데는 끝까지 지키고 완수해야 했다. 그 직무의 수행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이루어진다. 성령 곧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성도의 놀라운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주 예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와 화목하시며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약속의 성취이다(14:16-17). 성령께서는 우리가 거듭나서 예수를 믿을 때 우리 속에 들어오신다(1:13; 고전 12:13). 로마서 8:9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성령께서는 그 명칭 그대로 거룩한 영이시다. 그는 우리 속에서 거룩한 정신과 거룩한 마음을 주신다. 또 그는 위로자, 격려자이시다(14:16).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가 주신 직무를 행하게 하신다(36:27). 디모데의 복음 전도의 직무도 디모데 속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잘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에게 맡겨진 아름다운 일, 즉 그의 전도자의 직무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완수하라고 교훈하는 것이다.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모든 사람은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모든이라는 말은 때때로 대략적 의미로 사용된다. 아시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반대하였고 그를 버렸다. 디모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울을 버린 대표적 인물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었다. 그들은 유명한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바울의 전도 사역은 이와 같이 평탄치 않았다. 그가 곳곳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를 반대하는 자들도 많았다. 한두 사람이 바울을 버려도 인간적으로 괴로웠을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했을 때 바울의 괴로움은 매우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경험하셨던 바이었다. 요한복음 6:66-68,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사람들이 바울을 버린 것은 그의 입장이 강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부드러운 말을 좋아한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이 만드는 성향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고 온전히 따르기보다 적당하게 하기를 좋아한다. 또 그들은 악한 자들과 정면으로 싸우기보다 적절히 타협하고 절충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의와 불의, 진리와 비진리, 빛과 어두움 사이에는 타협과 절충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대항하고 진노케 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든지 반대하든지 간에, 주의 참된 종들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

옛날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온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죄악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타협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잘못된 점들을 고치는 개혁을 단행했다(10:11; 13:1, 3-5, 8-9). 비록 반대자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바른 교훈과 행동을 따라주었다. 우리는 오늘날도 이런 지도자들과 이런 개혁과 부흥이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16-18]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바울에게는 고난만 있은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위로도 있었다. 그것은 오네시보로의 집을 통해 받은 위로이었다. 오네시보로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보내신 위로와 격려이었다. 우선, 그는 바울을 자주 유쾌케 하였다. 바울은 고난 중에 자주 피곤하고 지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오네시보로의 방문은 바울을 기쁘게 하였고 그를 격려하였다. 또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믿음이 있는 성도이었다. 세상 친구들은 사람이 부유하고 평안할 때는 많으나 그가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그를 떠나간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진정한 친구는 적다. 바울에게도 그러했다. 그가 옥에 갇히게 되고 사형을 받을 가능성이 많아졌을 때 소수의 친구들만 그의 곁에 있게 되었다. 오네시보로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었다. 또 오네시보로는 로마에 있을 때에 바울을 부지런히 찾아 만났다. 아마도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을 바울을 수소문하여 찾아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부지런히 찾아마침내 그를 만났다.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날마다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했을 바울에게 오네시보로의 방문은 큰 위로이었을 것이다. 오네시보로는 에베소에서도 바울을 많이 섬겼었다. 디모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얼마큼이라는 원어(호사)얼마나 많이라는 뜻이다. 오네시보로는 아마 에베소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오네시보로는 여러 일들에서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바울을 도왔고 섬겼다. 그것은 바울이 주의 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의 이름으로 소자(小子) 한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곧 그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의 말씀을 지켰다.

12절부터 1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말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의 바른 말씀을 보수하고 악한 자들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바른 말씀만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부겔로와 허모게네같이 참된 교회를 버리는 자가 되지 말고 지키는 자가 되고, 또 오네시보로같이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3장 좋은 성경 말씀] 장로와 집사의 자격(딤전 3:1-16)

 

[디모데전서 3장 좋은 성경 말씀] 장로와 집사의 자격(딤전 3:1-16)

디모데전서 3장에서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책망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고 절제하며 신중하고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여 가르

bedesd153.tistory.com

 

반응형